흐릿했던 기억도 관련된 냄새를 맡으면 또렷해진다. 이는 후각의 특징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각, 미각, 촉각, 청각 등의 감각은 간뇌의 시상을 거쳐 대뇌로 전달된다. 하지만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중간 과정 없이 바로 대뇌의 안와전두피질에 전달된다. 안와전두피질은 기억·감정과 관련 있는 해마·편도체와 연결되어 있다.
냄새를 맡으면 냄새 분자가 후각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데, 이 후각 수용체가 냄새를 구분해 대뇌에 전기적 신호를 보내면 냄새를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냄새를 느끼는 순간의 기억과 감정이 해마와 편도체에 함께 저장되는 것이다.
기억력과 후각 신경은 한 몸...알츠하이머병 조기진단에도 활용 가능해이런 식으로 후각 신경과 기억력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기억력 저하를 유발하는 신경계 질환이 발생하면 후각 상실이 일어난다. 반대로 노화, 머리 부상, 만성 코막힘 등으로 후각에 문제가 생기면 기억력 저하가 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근래에는 후각 민감도와 후각 상실을 알츠하이머의 전조를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메튜 s. 굿스미스(matthew s. goodsmith)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올해 국제 학술지 '미국신경과학회지(neurology)'에 후각 지표와 알츠하이머병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냄새 식별에 영향을 주는 apoe e4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65세에서 69세 사이에 후각 민감도가 급속도로 떨어지며, 일반인에 비해 사고력과 기억력이 감소할 위험이 1.7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메튜 교수는 "많은 숫자의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후각 상실이 관찰되는 만큼, 후각 민감도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알츠하이머병 조기진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수면 중 후각 자극하면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 미쳐이와 더불어 후각과 기억력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수면 중 후각을 자극하면 뇌 건강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신경생물학과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신경과학 프론티어스(frontiers in neuroscience)'를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잠을 자는 동안 냄새에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억력 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었다. 연구에는 60~85세 미국인 성인 43명이 참가했다. 연구진은 먼저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게는 4개월 동안 매일 수면 동안 2시간씩 디퓨저를 사용해 7개의 향을 맡도록 했으며, 다른 그룹은 평소처럼 수면하도록 했다. 이후 두 그룹 모두 언어 기억력 시험을 보도록 했다. 그 결과 디퓨저 향을 맡으며 수면을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언어 기억력 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았으며, 뇌 mri 검사에서 기억력을 강화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후각은 기억력과 뇌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현대에는 탈취제를 사용하는 등 냄새 자극을 최소화하는 생활을 한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생활습관이 현대인의 뇌와 기억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 어떤 향기가 뇌의 퇴행을 억제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때문에 여러 향기를 뒤섞어서 맡기보다는 개인의 선호도에 맞춰서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을 수면 시간에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조언했다.